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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術品

[121] 北朝鮮 青磁名人 임사준作, 青磁壷 (2010.1.4, 00041)



임사준 (인민창작가)

1927. 8. 12. 남포시 와우도구역 해창동에서 출생
1941.부터 남포도자기공장에서 견습공으로 기술 습득
1945. 해방 후부터 작품활동
평양도자기공장 연구원(1957년까지)
1957. 평양미술대학 공예도안학과 교원(1961년까지)
1961. 조선미술가동맹 현역창작가로 활동(1982년까지)
1982. 만수대창작사 도자기창작단 소속으로 활동
1983. 일본에서 <현대고려청자기 2인전람회> 개최
1984. 공훈예술가 칭호 수여 받음
1985. 일본에서 <현대고려청자명작전> 참가
1985. 인민예술가 칭호 수여 받음
1989. 일본에서 <현대고려청자명작전> 참가.
1989. <김일성상> 수상 (우리로 치면 최고 훈장)

현 조선미술가동맹중앙위원회 위원, 집행위원. 미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 공예심의원 . 만수대창작사 도자기창작단에 <가족창작실> 운영.


임사준 (1927)
도자기창작가, 김일성상계관인, 인민예술가.
남포시 와우도구역에서 출생, 남도도자기 공장에서 수련

≪인삼상감무늬꽃병≫, ≪흑화련화무늬꽃병≫, ≪잉어장식꽃병≫ 등 수많은 국보적 명작의 근저에는 고려청자기의 신묘한 비밀의 하나인 소성법을 과학적으로 밝힌 피타는 노력이 깔려 있다.

진사자기를 포함한 작품의 다양성과 세련된 기교는 그를 ≪천하일품≫의 주인으로 되게 하였다.


[ 조선일보:: 미술 :: 작가소개] 임사준
http://nk.chosun.com/culture/culture.html?ACT=art15_13
1927년 남포시에서 출생한 도자기 창작 공훈예술가로 14세부터 도예를 시작하여 고려청자와 이조백자의 고유한 특성과 소정법을 완성하였다. 대표작으로는 < 잉어장식 부각꽃병> <목단상감 장식무의 꽃병> <목화련합무의 꽃병> 등이 있다.

임사준 (1927. 8. 12. - ) 도예가. 인민예술가

1927. 8. 12. 남포시 와우도구역 해창동에서 출생
1941.부터 남포도자기공장에서 견습공으로 기술 습득
1945. 해방 후부터 작품활동
1950. 인민군 입대
1955. 인민군 제대
평양도자기공장 연구원(1957년까지)
1957. 평양미술대학 공예도안학과 교원(1961년까지)
1961. 조선미술가동맹 현역창작가로 활동(1982년까지)
1982. 만수대창작사 도자기창작단 소속으로 활동
1983. 일본에서 <현대고려청자기 2인전람회> 개최
1984. 공훈예술가
1985. 일본에서 <현대고려청자명작전> 참가
1985. 인민예술가
1989. 일본에서 <현대고려청자명작전> 참가.
1989. <김일성상> 수상
현 조선미술가동맹중앙위원회 위원, 집행위원
미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 공예심의원
만수대창작사 도자기창작단에 <가족차작실> 운영.


남포에서 겨우 소학교를 졸업한 임사준은 1941년부터 남포도자기공장에서 견습공으로 기술을 배웠으며 해방 후 남포에서 일본인들이 경영하던 파괴된 도자기 공장을 복구하고 김성택, 우치선, 홍기영 등과 고려청자기 제작에 나섰다.

6.25 전쟁 중에는 인민군에 입대, 포병으로 복무한 후 1957년 제대후에는 평양도자기공장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1956년 평양미술대학에 공예도자기학과가 생겨 도예가들을 대학교원으로 소환하게 되자 1957년 평양미대 공예도안과 교원으로 임명되어 1961년까지 재직하였다. 평양 미대를 퇴임한 후 1982년까지는 조선미술가동맹 현역창작가로 활동하였고, 1982년부터는 만수대창작사 도자기 창작단에 소속되어 수많은 명작들을 발표하였으며, 1983년 11월 일본에서 우치선과 함께 <조선 현대 고려청자기 2인전시회>을 개최하여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임사준은 우치선과 함께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북한 현대 도자기를 대표하는 도예가로서, 우치선과 임사준은 청자기 분야에서 서로 쌍벽을 이루는 도예가들이지만 창작성향에서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우치선은 전통을 존중하고 장식문양도 전통적인 고려청자기의 수법에서 크게 벗어나려고 않는 반면, 임사준은 형태와 무늬장식에서 혁신적인 것을 주장하여 실현하는 도예가이다.

따라서 부분들에 치우치지 않고 전반적 균형과 조화를 맞추면서 큼직큼직하고 시원스럽게 처리하는 형태와, 묘사대상의 본질적 특징을 집약하여 함축된 표현으로 장식해내는 임사준의 도자기는 형태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시원시원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임사준의 시도는 초대형 청자기 제작으로 실현되어, 1999년 2월 김정일 위원장의 생일을 맞아 십장생을 상감한 높이 2.16미터짜리 세계최대 크기의 상감청자를 제작해 내기도 하였다.

임사준은 현재 만수대창작사 도자기창작단에 가족창작실을 운영하면서 조선미술가동맹중앙위원회 위원, 집행위원과 미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 공예심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남 경익과 차남 관익, 3남 경익 등 아들 3형제와 딸들이 모두 가족창작실에서 가업을 잇고 있는데 이들의 도자기 작품들은 공훈예술가의 작품 이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경제] 北, 고려청자의 거장 임사준 사망



임사준(1927.8.12.~2007.4.19)


고려청자의 거장인 임사준(1927.8.12~2007.4.19)이 숨졌다고 북한조선중앙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일 만수대창작사 창작가이자 `김일성상' 계관인 (최고 훈장을 받은 것과 같음), 인민예술가 임사준의 빈소에 화환을 보내고, “임사준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여 고인의 영전에 화환을 보냈다.”고 중앙 통신은 전했다

임사준은 우치선(1919~2003)과 함께 최초로 고려청자를 재현하여 세계 여러나라에 우리의 고려청자의 우수성을 과시하면서 고려청자 제작의 양대 산맥을 이뤄왔다.

특히, 1983년, 85년, 89년 일본 전시를 통하여 그의 고려청자 작품은 일본 언론과 도예가들로 부터 극찬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고려청자를 재현하여 전통을 계승발전 시켜 시대적 미감에 맞게 생생한 현상을 창조함으로써 고려청자의 새로운 발전면모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사준 선생의 도자기중 일부는 2001년, 2004년에 국내에서 일부 전시되기도 하였고, 서울옥션에서 작년에 추청가 300만원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아들인 경익. 광익씨도 대를 이어 고려청자를 계승발전 시켜, 북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하였고, 만수대창작사 창작가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 최다 미술품 판매 경매 사이트 포털아트(www.porart.com) 김범훈 대표는 “얼마 전에 북 원로화가 김상직 선생의 말씀이 ‘ 작품이 내려가는 사이에 유고작이 될 수 있다’ 는 말을 하였는데, 계속 북과 협의 임사준 도자기 공급을 희망하여 오다가 두 달 전에 계약하고 통일부 승인을 받아서 4월 16일에 통관을 하였는데, 19일에 유고작이 되었다.” 며 “유고전에 계약 공급 받은 작품이기 때문에, 이번에 공급된 작품들이 품절될 때까지 유고작 기준이 아닌 가격에 매일 1~2점을 경매할 예정이다.” 고 밝혔다.

김대표는 “우치선 선생이나 임사준 선생은 남북한이 갈려지기 전 분들로, 우리나라 최초로 고려청자를 재현하였을 뿐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의 전시를 통하여 우리 고려청자의 우수성을 알린 분들이다.” 며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자를 목적으로 작품을 구입하려는 분들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고 밝혔다.

국내 최다 미술품 판매 경매사이트 포털아트(www.porart.com)는 임사준 작품 외에도 임사준의 아들, 우치선 작품 그의 아들 딸 작품 등 북한 최고 도예가들의 작품들을 경매를 통하여 국내 미술품 투자자에게 소개하여 오고 있다.

<다른작품보기>
http://www.porart.com/search_result.php?scode=top&search=all&searchstring=%C0%D3%BB%E7%C1%D8